만들어진 신.

reading. 2007/09/0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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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킨스의 책 중 한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 나가고 있는 책이 될 듯 하다.
(미국에서도 1년 내내 NYT 베스트셀러 30위권 이내에 포진 중.)
주문하고 즉각 배송이 안되는 것도 오랜만.

2.
도킨스의 작업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새로운 사실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통쾌한 '야유'를 원한다면 [악마의 사도]에 실린 글들을 보면 된다. (물론 그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따로 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도킨스의 저서 중 must-read에 속한다.) 창조논쟁에 대해서는 이미 [눈먼 시계공]이 있다. 본격적으로, 이 책은 무신론에 관한 것이다.

최근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기독교는 상당수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거대한 교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신론이 크게 울림이 있는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영미권에서 가지는 무게는 남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무신론'이 좀 더 관대하게 받아 들여지는 이유는 '신'과 '인격신'을 별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을 읽고 알 수 없는 이질감(도킨스가 왜 이렇게 열을 내는 거지?)을 느낀다면 그 원인도 마찬가지다. 도킨스의 정의, 즉 영미권의 생각에 따르면 한국에는 생각보다 많은 '무신론자'들이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인'들 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3.
도킨스는 왜 신이 존재하지 않는지,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또 신이 없더라도 우리가 좋은 가치들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말한다. 우리에게 신은 필요없다.

4.
나의 입장은? 내가 과거에 밝힌 입장은 간단히 말해서 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하나로 보는 것이다. (많은 종교적 배경을 가진 과학자들이 택하는 입장이다. 나는 이것을 '안정감'이라고 표현했었다.) 요컨데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들어진 신]을 읽으면서 나의 입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게 됐는데, 책의 서두에서 언급하는, 호킹과 아인슈타인의 경우와 같은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의 개념이었다. 내가 때때로 느끼는 지적 희열과 감동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게되면 누구나 신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그것들에 대하여 '그'에게 감사할 수도, 그것을 '그'의 공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도킨스는 이런 식의 표현 양식조차 거부한다.
그러나 나는 물리학자들이 비유적인 의미로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물리학자들의 비유적 또는 범심론적 신은 성서에 나오는, 그리고 사제와 이맘과 랍비가 말하는 신 즉,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고 죄를 벌하고 기도에 답하는 신과 아득히 멀다. 둘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것은 지적인 반역 행위다. (35p.)

5.
많은 이들이 서평을 통해서 종교에 대한 비판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 책이 쓰여진 동기와 목적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도킨스가 인격신에 대한 매몰적인 믿음에 반감을 가지고 책을 썼지만, 같이 '씹자'고 나선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입장 정리와 관계없이 멍석 한 번 더 깔린 것으로 보고 눕는 사람들이 몇 있더라.

그보다 도킨스가 종교에 관해서 밝히는 가장 흥미로운 통찰은, 이미 [악마의 사도]에서 자세하게 밝힌 바 있는 사회 전체에 깔린 종교에 대한 관대함이다. 이것은 별도의 주제로 고민할 가치가 있다.

6.
대부분의 원칙적인 유신론자들에게 이 책은 아무 소용없다. '신'이라는 무한기관은 일단 누군가의 지각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피드백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이천 년 이상에 걸쳐 가다듬어진 (비)논리는, 비아냥거릴 수는 있어도 그것을 설파하는 개인의 생각을 바꾸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그보다 짧아도 상관없다.) 어떤 황당한 종교도 쉬이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가장 강력한 진화론적 존재다.

7.
[God Delusion]과 '만들어진 신'은 천양지차다. 그걸 떠나서 이건 의도를 왜곡한 것이다. 물타기에 가깝다. 부제를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라고 붙여놓은 것도. 이 책이 창조론을 다루고 있나?

이한음씨의 번역도 그래도 괜찮았던 [악마의 사도]에 비하면 형편없다. 후반부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수준. 책이 나오길 좀 더 기다리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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