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센스 됐던 [Underachievers Please Try Harder] 속지에 이렇게 썼었다.
어쩌면 이들의 전략은 과거의 음악적 유산에 다양한 장식을 얹어 내놓은 재활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가능합니다. 자신들의 개인적인 고민과 그에 따르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죠. 어쩌면 이들이 이런 식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좀 더 확대한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상, 인디팝이라는 장르의 현재 세대에서 이런 전략으로 각광받을 수 있는 마지막 주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카메라 옵스큐라의 데뷔 앨범이 바로 그 고만고만함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당장의 성과도 행복하지만 이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작년에 벨 앤 세바스찬은 하나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런 지적을 브라이언 윌슨과 벨 앨 세바스찬의 현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다른 시각도 가능합니다. 현재의 브라이언 윌슨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현시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고, 벨 앤 세바스찬이 밴드로서의 개별적 성취를 위해 앞으로 나아간 상황에서 이들은 오히려 신선합니다. 누구나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랑스런 팝 모음집으로서 이 앨범의 위치는 현재 독보적이라는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굳이 이소벨 캠벨의 목소리로 벨 앤 세바스찬의 노래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이들이 다른 아티스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거나 음악씬의 지형도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자를 즐겁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2번째 앨범에서 만들어낸 기회는 아마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한편 이런 지적을 브라이언 윌슨과 벨 앨 세바스찬의 현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다른 시각도 가능합니다. 현재의 브라이언 윌슨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현시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고, 벨 앤 세바스찬이 밴드로서의 개별적 성취를 위해 앞으로 나아간 상황에서 이들은 오히려 신선합니다. 누구나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랑스런 팝 모음집으로서 이 앨범의 위치는 현재 독보적이라는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굳이 이소벨 캠벨의 목소리로 벨 앤 세바스찬의 노래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이들이 다른 아티스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거나 음악씬의 지형도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자를 즐겁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2번째 앨범에서 만들어낸 기회는 아마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기서 2를 3으로 고치면 지금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게 좋은 걸까. 뭐 아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