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어떤 지지자들의 안타까움을 평가절하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 아쉬움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어 기본적인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까지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반대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대의정치/정당체계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나는 우리 세대에 그 이상의 대의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니꼬운 것은 개표 이후 이곳 저곳에서 소수정당에게 보여준 아낌없는 폭력적 행태다. 그 난리들을 하면서도 자기 블로그에는 볼테르 인용 한 줄
없는 자가 없을 것이다. 멋있는 말이긴 하지. 눈에 자주 띄면서도 제일 웃긴 건 심상정 고마워서 비례대표는 진보신당 찍어주려고 했는데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라는 태도. 저기...말 잘 들은 민노당은?
1.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에 민노당은 정말 뭔가 얻은 걸까. 좀 더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2.
세상이 '똑바로' 되면 진보에 표를 던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미안하지만 그 세상은 당신 생에 안 온다.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자 판단이다. 혹시 그 날이 와도, 당신은 '아직'이라고 말할 것이다.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고, 대체 언제쯤 '이제 되었다'고 하려나. (내 귀에는 '파이를 키우자'는 말이랑 겹쳐 들린다.)
당장의 승리를 만끽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고 그에 맞게 개인적 차원에서 역사에 힘을 보태는 것보다 쉽긴 하다. 하지만 당신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월드컵에 대한 그것보다는 나아야 한다. 우리 팀 시합이 아니라 축구가 재미없다는 생각으로는 영원히 16강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축구도 선거도 한일전이 제맛...이라는 농담이 이제 농담으로 안 보인다.)
3.
서울시장 결과 이후의 분노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온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번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서 어떤 교훈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가 교훈인가? 박근혜 대통령을 아직 못 봐서 정신들이 없다. 그건 싫은 정도가 아니라 쪽팔리다.
4.
전략과 전술이 부재하는 명분은 애통하다. 대개의 경우,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치들이 그 명분에 휩싸여 그 가치를 다수에게 전달할 방법을 구축하지 못하고 구호만 외치다가 사그라지거나 오해받는 상황을 볼 때마다 그렇다. 그들의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 자체로, 전략과 전술의 부재를 애통하게 여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 더 편한 핑계와 희생양을 찾아내곤 한다. 어떤 교훈도 남겨줄 수 없는 그 핑계에는 아무 가치도 없다.
예컨데, 나는 페미니즘이 인간 존중의 차원에서 전략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혹은 반MB 또는 범야권)이 적절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고 효과적인 선거전략을 들고 나오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내가 그들을 지지해서 그런가? 아니, MB(들)이 보기 싫어서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 똑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정확히는 필요한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지만, 결과적으로 적절했던 수준의 방법.)
우리의 대표 선수는 무능했다. 그걸 범여권이라고 부르던 민주당이라고 부르던 사실이다.
내가 찍었는데 왜 안될까 고민하지 마라. 왜 MB 지지율이 50% 일까, 조작일꺼야...랑 같은 생각이니까. 한 마디로, 인터넷 좀 쳐끊으라고.
5.
공학적으로, 노회찬의 사퇴는 한명숙의 당선으로 이어지는가? 3.2%의 표가 분산되어 오세훈보다 0.6% 이상 한명숙으로 간다는 가정 하에 그렇다. 나는 이 가정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지사 무효표가 '실수로' 심상정을 찍은 것이었다고 믿는 것과 동일한 순진함이다. (다른 문제는 내가 인터넷에서 이걸 봤으니 남들도 알거라고 생각하면서, 왜 이것만 반대로 생각하나?) 여권 단일화가 한나라당 지지층을 추가적으로 결집시키는 효과를 계산에 넣으면 더욱 복잡하다. 애초에 노회찬을 설득하거나, 또는 3.2%를 흡수할 수 있는 정책 개발에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그 표들은 '남의 떡' 이었다. 이럴 바에 지상욱이 노회찬 수준의 지지율을 확보했다면 한명숙이 서울 시장이라고 여기는 것이 더 간단하다. 심은하 나빠요.
우리에게 신과 같은 예지력이 있어서, 노회찬의 사퇴가 한명숙의 필승으로 이어졌다고 하자. 신의 뜻에 거스른 노회찬에 대한 비난과 진보신당에 대한 비아냥이 정당한가. 그럼에도 여전히, '한명숙의 패배'와 '오세훈의 승리'는 남는다. 구청장 투표에서 25만표 차이로 한나라당이 뒤졌는데, 시청 투표는 3만표 차이로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계산을 단순화 한다면, 시장은 한나라당을 찍고 구청장은 다른 당을 찍은 사람들이 20만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막말로 그 중 1.5만명만 뺏어오면 될 일이다. 그들이 누군가. 그 사람들은 '일 잘하는 젊은 시장 오세훈'을 찍은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세훈'에 대한 '한명숙'의 패배다. 그런데, 이게 단지 '한명숙'의 패배일까.
2년 후의 대선은 '졸라' 어렵다는 뜻이다. 안 그래도 대빵을 뽑는 한국 선거 구도의 특성 상 태생적으로 어려운데 '아주 씨바 졸라' 어렵다는 뜻이다. 신께서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번에 한나라당이 이기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6.
이번 선거의 프레임이 MB 대 반MB 였고, 그 구도 안에서 대승적인 단일화가 옳았다는 생각은 맞다. 그 프레임 안에서 한명숙이 후보도
됐고, 그 카드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그리고 그게 한명숙 카드의 최고치였다. 한명숙이 서울시장감도 아니었지만, 꼭 시장이 되어야 이번 선거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7.
이번 선거 결과의 숫자들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한나라는 서울/경기를 지켜서 좋지만, 그 이하와 교육감에서 명백히 패배했으니 지난 시기와는 지방 권력의 기운이 다르다. 민주당과 범야권은 국민들의 반MB 혹은 견제 정서가 턱끝까지 차오른 것을 확인했으나 그것을 최종적인 승리로 만들어낼 인물과 전략의 부재를 드러냈다. 친노는 여전히 불안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분은 물론이요, 실질적인 결과도 만들어 냈다. 진보신당은 내부적으로는 독단적인 의사결정의 역풍에 시달리고 외부적으로는 정치적 비난에 휩싸였다. 민노당은 현실 정치에서 지분을 가져간 것은 맞는데, 이게 지난 20년 동안 매번 반복되는 '출발점'인지 '종착점'인지 모르겠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고민스럽고 나도 고민스럽다. 국민들은 위대하다.
8.
패배의 원인이 아래에 있다. 저 차트의 의미가 '관악의 위엄' '용산의 배신' '강남 숑키들 ㅆㅂㅆㅂ' 밖에 안되나? 저 차트는 투표율이 모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절대 반지다. 선거는 누굴 찍는 일이고, 찍으려면 투표소에 가야 하고, 투표소에 가는 동력은 희망이다. 이게 민주당이 작년에 돌아가신 두 어르신들이 해냈던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들을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정치적 대의와 전략을 조화시킬 줄 아는 '실력'있는 정치인들 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ps.
제일 웃긴 건 강남 몰표 부분에 대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 운운하는 것이다. 강남 산다고 '노블리스' 아니라매? 그렇다고 치고
그들의 '오블리주'가 왜 당신 생각과 같아야 하나? 가져다 붙일 걸 붙여라.